제 목 | (책 읽기) 회색사랑(저자 윤창식)-18 | ||
등록일 | 2022.12.16 | 조회수 | 706 |
유장식은 어느 토요일(土曜日) 저녁 무렵에 성남시 은행동에 있는 창현 의 가게 다도해(多島海) 슈퍼를 찾아갔다. 외팔이가 된 창현은 홀로 하루 일과(日課)를 정리(整理)하는 중이었다. 코딱지만 한 슈퍼의 양철문(洋鐵門)은 요란한 소음(騷音)을 내며 닫혔다.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두 친구는 슈퍼 건너편 국밥집에 마주 앉았다.
"이 사람아, 그 몸으로 귀국(歸國)해서 대체(大體)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낸 건가?"
"월남에서 한쪽 팔을 잃고 나트랑 미군 의료(醫療)지원대(支援隊) AMC로 이송(移送)되어 3주간 치료(治療)받다가 귀국선(歸國船)을 타고 부산항(釜山港)에 내렸었지. 제대(除隊)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었고."
“그래도 고향 부모님이나 나한테는 알렸어야 했던 것 아닌가?”
“미안하시. 그때는 차라리 죽었어야 했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니까. 이런
몸으로 고향(故鄕)에 갈 용기(勇氣)가 나지 않았고 정옥이를 만날 자신(自信)은 더욱 없었고”
창현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눈물을 흘린다.
"장사는 잘 돼?"
"뭐 그렇지 뭐."
"그나저나 정옥이와 연락(連絡)은 되는가?"
“.......”
"혜경이도 정옥이 거처를 모른다던디?”
"언젠간 만나지지 않을까?"
"그려. 시골 골방에서 늘 다도해(多島海) 시인(詩人)을 꿈꾸더니 간판(看板)마저도 다도해(多島海) 슈퍼라고 달아 놓았구먼, 허허.”
"그런 셈이지. 올해는 꼭 한새봉에 국기(國旗)를 꼭 꽂고 싶네.”
"그게 무슨 소린가?"
"응, 신춘문예(新春文藝)에 도전(挑戰)해서 당선(當選)되면 우리 고향(故鄕) 마을 뒷산에 태극기(太極旗)를 꽂아버릴라네.”
창현은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해서 틈만 나면 무언가를 긁적이고 스 스로 다도해(多島海) 시인(詩人)이 되겠다고 공언(公言)하고 다녔었다. 중학교(中學校) 백일장(白日場)에서는 장원(壯元)으로 뽑히고 졸업(卒業) 후(後)에는 KBS 목포(木浦)방송국(放送局)에 사연(事緣)을 보내 방송(放送)을 타기도 했으며 월간(月干) 잡지(雜誌) 새농민과 전우신문(戰友新聞)에도 여러 차례 시(詩)가 실리는 등 타고난 글재주가 있었다.
장식이 안주(按酒)와 소주(燒酒)를 주문(注文)한다.
“자 쏘주 한 잔 하세.”
"나 요즘 술 끊었네. 교회(敎會) 나간 지 두 달 되었어."
"아 그래! 술을 그토록 좋아하던 다도해(多島海) 시인(詩人)께서 술을 마다하다니 시(詩)가 술술 나올까? 나를 만났으니 하느님도 봐주실 거네.”
"하기사. 솔직히 하나님이 마시라고 하면 안 마시겠지만 자네가 마시라고 항께 마셔불라네 작껏!“
우정(友情)은 종교(宗敎)보다 뜨겁고 깊은 그 무엇인가가 부딪치는 술잔 속에 녹아 있었다.
“혜경이는 잘 있제? 본 지도 참 오래 되었네. 내가 워낙 험한 세월(歲月)을 살다 보니 자네 결혼식(結婚式)도 못 가보고...."
"잘 있다네. 늦게야 가진 아기 때문에 쪼금 힘들어 하더군."
"그렇겄제. 나는 세상(世上)에서 혜경이처럼 착한 여자를 본 적이 없어."
"뭐 그럴라고."
"아녀. 천사(天使)가 따로 없어. 나는 혜경이가 수녀(修女)가 될까 봐 걱정했네.”
"그런 낌새는 못 느끼겠던디?"
"나는 중학(中學) 졸업(卒業) 후(後) 남포(南浦) 앞바다에서 2년 반 동안 짱뚱어 잡던 시절(時節)이 제일 행복(幸福)했던 것 같어.“
술을 세 잔째 목으로 넘기고 난 창현은 꿈을 꾸듯 눈을 간잔지런하게 뜨 면서 특유(特有)의 미소(微笑)를 짓는다.
간잔지런하다 : 졸리거나 술에 취해서 위아래의 눈시울이 맞닿을 듯이 가느다랗다
"뻘밭에서 고생고생해서 모은 돈을 하대성이 때문에 홀랑 날려 부렀다면 서?"
"대성이가 뭔 잘못이당가. 그 녀석도 잘해볼라고 하던 일이 어그러져서 그랬겠지. 세상(世上) 착한 놈 아니었던가. 그런디 혹 혜경이가 내 얘기는 안 하던가. 짱뚱어 시절(時節) 말이여. 지금 생각해도”
"성요셉 다닐 때 몇 번 마주쳤다고 하데만?"
"지금 생각해도 혜경이한테 겁나게 미안하지.”
"뭔일 있었던가?"
"말도 마소. 갯벌에서 막 나와 온몸이 뻘흙이 묻은 채로 혜경이를 자전거(自轉車)에 태우고 우리 마을까지 왔던 것 아닌가. 내려서 보니 혜경이의 하얀 교복(校服)이 온통 뻘흙으로 젖어부렀단 말이시. 흐흐.”
“그런 이야기는 안 하던디?"
“그 뒤로는 혜경이와 안 마주치려고 무척 힘들었다네. 자네한테 긴히 부탁(付託)이 있네."
"뭘까?"
“네가 일주일에 한 번씩만 공부를 도와주소.”
"신학대학(神學大學)에 가려고 고등학교(高等學校) 검정고시(檢定考試)를 준비(準備)하려는디 공부가 잘 안되어서...”
"그야 어렵지 않지만 신학대학(神學大學) 목사(牧師)가 되려고?"
"엉. 쫌만 도와주소. 친구(親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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