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무엇이든 쓰게 된다. by 김중혁-25 | ||
등록일 | 2023.01.13 | 조회수 | 1,134 |
에필로그
나는 창작(創作)을 하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흘려버린 밤이 몇 날인지, 나는 재능(才能)이 없는 것인지 모른다고 좌절(挫折)한 새벽이 또 몇 날인지 모른다. 그 오랫동안 끙끙대고 있는데도 여전히 창작(創作)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다. 남들은 모두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는 창작(創作)의 비밀(祕密) 같은 게 있지는 않은지 의심(疑心) 가득 찬 눈초리로 이 글을 쓴다.
새하얀 캔버스 위에 가늘고 붉은 줄 하나를 세로로 찍 그어놓은 작품(作品)을 보고 “그런 것 나도 하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자신(自身)만만한 목소리로 “하지만, 안 했잖아.” 주인공 레너드피콕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얇고 희미한 붉은 줄 하나일 뿐이지만 그걸 긋는 것과 긋지 못한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差異)가 있고 비난(非難)하기는 쉽지만, 선(線)을 긋는 것은 어렵다. 비꼬는 것은 쉽지만 첫 문장(文章)을 시작(始作)하는 건 어렵다. 붉은 선(線)을 한 번 긋고 나면 선(線)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찬다. 어떻게 하면 더 잘 그을 수 있는지 남들은 어떻게 선(線)을 긋는지 살펴보게 된다.
한 번도 붉은 줄을 그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어야 할지 막막(寞寞)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어보면 재밌다. 붉은 줄은 누구나 그을 수 있다. 자주 그으면 더 잘 그을 수 있다.
창작(創作)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비판(批判)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번이라도 창작(創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작품(作品)에 대해 말하는 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수영(水泳)을 갓 배운 사람에게 박태환(朴泰桓)의 경기(競技)가 이 전과 달라 보이듯 한 번이라도 소설(小說)의 첫 문장(文章)을 써 본 사람에게 ‘칼의 노래’ 첫 문장(文章)은 엄청난 무게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시작(始作)은 늘 힘들다. 원고지(原稿紙)가 아득해 보이고 과연 살아서 저 황무지(荒蕪地) 같은 빈칸을 다 채울 수 있을지 걱정된다. 고민(苦悶)과 걱정 끝에 일단 시작(始作)하고 나면 몸 어디에선가 이상한 물질(物質)이 분배(分配)되기 시작(始作)한다. 정말 묘(妙)한 기분(氣分)이다. 내 손으로 글을 쓴다기보다는 글이 나를 통과(通過)해서 나오는 것 같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단어(單語)들이 좁은 통로(通路)를 비집고 나오려고 순서(順序)를 기다리고 있고 나를 통과(通過)한 문자(文字)들이 컴퓨터로 쏟아져 나온다.
글쓰기는 고통(苦痛)스럽다. 그러나 고통(苦痛)을 넘어서면 엄청난 쾌감(快感)이 있다. 힘든 일을 고통(苦痛)스럽게 했을 때 얻는 쾌감(快感)이다.
최근 나는 자주 우울(憂鬱)했다. 상식적(常識的)이지 않은 일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더 험해지고 더 거칠어져야만 버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우리는 중요(重要)한 걸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뭔가 중요(重要)한 걸 꽉 움켜쥐고 이곳까지 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어쩌면 바스라지는 흙덩어리 같은 것은 아닐까.
뭔가 만드는 창작(創作)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거칠어질 수는 없다. 강해질 수는 있어도 험해지지는 않는다. 창작(創作)이 배부른 소리고 지금은 해결(解決)해야 할 현실적(現實的)인 문제(問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현실(現實)을 피(避)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現實)을 껴안는 일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는 잘못된 것을 제거(除去)하는 것만으로는 충분(充分)하지 않다.”고 하였다.
창작(創作) 창의성(創意性) 상상력(想像力)은 우리는 왜 사는지에 대한 답(答)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창의성(創意性)은 우리에게 가장 활기(活氣)찬 삶의 모델을 제공(提供)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작(創作)을 통해 덜 거칠게 말하는 법(法)을 배워야 한다. 서로 더 잘 이해(理解)할 수 있어야 한다. 소설(小說)이든 노래든 그림이든 시(詩)든 상관(相關)없다. 무언가를 만들고 결과물(結果物)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보면 무언가 변(變)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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