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무엇이든 쓰게 된다. by 김중혁-18 | ||
등록일 | 2023.01.03 | 조회수 | 1,047 |
말하는 것의 반대(反對)는 듣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다. 대화(對話)는 주고받는 것이고 대화(對話)를 위해서는 말이 필요(必要)하다. 진정(眞正)한 대화(對話)의 달인(達人)은 오래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처럼 말들이 오갔고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말들이 표시(表示)됐다. 대화(對話)를 시각적(視覺的)으로 가장 잘 표현(表現)한 예술(藝術)은 만화(漫畫)다. 만화책(漫畫冊)처럼 연속(連續) 예술(藝術)이었던 만화(漫畫)가 인쇄(印刷) 매체(媒體)와 만나면서 칸에 갇히게 되었다. 변화(變化)는 어쩔 수가 없다. 적응(適應)해야 한다. 칸에 갇힌다는 것은 한계(限界)이자 새로운 기회(機會)이고 가능성(可能性)이다. 인쇄(印刷)는 공간(空間)을 전복(顚覆)시켰고 재료(材料)를 바꾸었다. 종이나 돌에 그림을 그릴 필요(必要)가 없어졌고 길이의 한계(限界)도 사라졌다.
네 칸 만화(漫畫)는 모든 이야기를 그 안에서 끝내야 한다는 제약(制約)이 있다. 첫 번째 칸에서 분위기(雰圍氣)를 잡은 다음, 두 번째 칸에서 이야기를 전개(展開) 시키고, 세 번째 칸에서 절정(絶頂)에 이르면, 네 번째 칸에서 반전(反轉)이 일어난다. 네 칸 만화(漫畫)는 모든 이야기와 플롯의 압축판(壓縮版)이다. 현실(現實)을 파악(把握)하고 현실(現實)을 뛰어넘는 힘을 만화(漫畫)는 우리에게 선물(膳物)해 주었다. 만화(漫畫)의 칸 속에 적힌 말들은 대화(對話)의 묘미(妙味)를 보여 준다. 커다랗게 적힌 말들은 큰 목소리로 들리고 작게 적힌 말은 들릴 듯 말듯 작은 목소리로 들린다.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運命)’은 세계적(世界的)으로 가장 위대(偉大)한 전쟁소설(戰爭小說) 중 하나다. ‘삶과 운명(運命)’에는 2차 대전(大戰) 중 전체주의(全體主義) 사회(事會)에서 겪으며 생존(生存)해야 했던 한 인간(人間)의 비극(悲劇)이 생생(生生)하다. 10년 동안 집필(執筆)했지만 그로스만은 자신(自身)의 작품(作品)이 출판(出判)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1961년 KGB가 작품(作品)을 압수(押收)했기 때문이다. 1980년 스위스에서 친구(親舊)가 가지고 있던 복사본(複寫本)이 최초(最初)로 공개(公開)되었다. 우리나라에는 번역본(飜譯本)이 아직 없다.
러시아에서는 그동안 엘리트 지식인(知識人)들만 사미즈다트 또는 해외(海外)에서 밀반입(密搬入)해서 읽었던 책(冊)들이 1988년 일반(一般) 대중(大衆)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금서(禁書)로 분류(分流)되었던 책(冊)들이 매주(每週) 출판(出版)되자 소련(蘇聯) 전역(全域)이 독서(讀書) 광풍(狂風)에 휩싸였다. 책(冊)을 사기 위해 사람들은 새벽부터 가판대(街販臺) 앞에 줄을 길게 섰고 지하철(地下鐵)에서 버스에서 심지어 길을 걸으면서도 마치 전투(戰鬪)를 치르듯 홀린 사람처럼 책(冊)을 읽었다.
사미즈다트 : 러시아어로 검열을 피해 지하에서 출판했던 자가출판, 또는 그 인쇄물을 말한다.
로버트콘퀘스트는 프로레타리아 계급(階級)의 사기(士氣) 저하(低下)를 두려워해 진실(眞實)을 함구(緘口)하던 서구(西歐)의 모든 공산당(共産黨)의 길동무들로부터 CIA의 스파이라는 멸시(蔑視)를 받으며 60년대 초반(初盤)부터 집단화(集團化)와 숙청(肅淸)의 역사(歷史)를 연구(硏究)한 영국(英國) 출신(出身) 선지자(先知者)이다.
까라마조프 형제들 : 어린 시절(時節)에 간직했던 아름답고 신성(神聖)한 추억(追憶)이 가장 훌륭한 교육(敎育)이다. 인생(人生)에서 그런 추억(追憶)을 많이 간직하게 되면 한평생(限平生) 구원(救援)받게 된다. 그 추억(追憶) 중 하나라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남게 되면 그 추억(追憶)은 언젠가 여러분의 영혼(靈魂)을 구원(救援)하는 역할(役割을 할 것이다.
“엄숙(嚴肅)한 인간(人間)의 눈물마저 조소(嘲笑)하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을 위해 고난(苦難)받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꼴랴에게도 심술궂은 조소(嘲笑)를 보낼지 모른다. 그런 인간(人間)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설령(設令) 그런 악한(惡漢)이 된다고 하더라도 가장 냉소적(冷笑的)이고 잔인(殘忍)한 인간(人間)이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이렇게 함께 일류샤를 묻어준 일과 그가 죽기 전에 베풀었던 사랑과 이렇게 큰 바위 옆에서 우의(友誼)를 나누던 일을 기억(記憶)하자. 그러면 우리는 최소(最小)한 이 순간(瞬間)만이라도 착하고 훌륭한 인간(人間)이었다는 사실(事實)을 비웃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이 아름다운 추억(追憶)이 우리를 커다란 악(惡)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다. 그리고 지난날을 회상(回想)하면서 나는 그때 착하고 용감(勇敢)했으며 명예(名譽)로운 사람이었다고 스스로 말할 것이다. 원래(元來) 인간(人間)은 착하고 훌륭한 것을 비웃는 본능(本能)이 있으니까 속으로 코웃음을 치는 것쯤은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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