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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책 읽기) 회색사랑(저자 윤창식)-4
등록일 2022.12.16 조회수 709

"송창현 이등병(二等兵) 휴가(休暇) 마치고 귀대(歸隊) 신고(申告) 합니다. 해병(海兵)!"

"쉬엇!" 미친개라는 별명(別名)으로 악명(惡名) 높은 중대장(中隊長)의 눈빛이 번뜩였다.

너 이 새끼! 왼편 윗주머니에 차고 있는 게 뭐여?”

"아 만년, 만년필(萬年筆)입니다."

"어디서 주운 거야?"

", 주운 거 아닙니다. 정옥이, 아니 애인(愛人)이 선물(膳物)한 것입니다."

애인? 짜식 가지가지하네.”

 

미친개는 미친년 널뛰듯 양팔을 휘두르며 송 이병(二兵)의 가슴팍에 주먹을 퍼부었다.

 

"시정(是正)하겠습니다!"

"야 임마! 누가 요따위 것을 주머니에 꽂고 다니라고 했냐? 군기(軍紀)가 빠져 가지고.. 야 새꺄! 장교(將校)들도 그딴 것 윗주머니에 꽂으면 안 되는 것 몰라. 쌩 쫄병 주제에." (퍽퍽 퍼버벅)

 

퍼버벅 퍽퍽 아비요! 이것은 홍콩 배우(俳優) 이소룡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흠씬 얻어터진 창현은 내무반(內務班)에 돌아오자 유독(惟獨) 왼쪽 가슴에 심한 통증(痛症)을 느꼈다. 손으로 가슴을 만져보았다. 핏물이 퍼런 군복(軍服)을 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미친개의 주먹세례에 만년필(萬年筆)이 깨지면서 만년필(萬年筆) 펜촉이 가슴을 찌른 모양(模樣)이었다. 창현은 닭똥 같은 굵은 눈물을 쏟고 말았다. 창현은 정옥이가 하얀 손수건에 곱게 싸서 선물(膳物)한 만년필(萬年筆)이 그토록 가슴팍을 쓰리게 할 줄은 몰랐다. 창현은 산산(散散)이 흩어진 만년필의 혼령(魂靈)은 이제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이 되었다고 망연자실(茫然自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슴의 통증(痛症)이 아직 남아있던 며칠 후 송창현은 일병(一兵)으로 승급(昇級)하고 야간(夜間) 경계(警戒) 근무(勤務)를 끝마친 후 내무반(內務班)에 들어서자 내무반(內務班) 공기가 뭔지 모르게 뒤숭숭했다. 부대원(部隊員)들은 하나같이 긴장(緊張)한 낯빛이 역력(歷歷)했다. 창현은 전입(轉入) 동기(同期)이자 함께 승급(昇級)한 고응석 일병(一兵)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물었다.

 

"뭔 일 있었냐?“

 

고 일병(一兵)은 집게손가락을 자기 입에 세로로 갖다 대면서 더 이상의 물음을 막았다. 하기야 창현도 며칠 전부터 부대(部隊) 전체(全體)가 긴장(緊張)하는 분위기(雰圍氣) 속에 감싸여 있다는 점을 나름 감지(感知)는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귀대(歸隊)하는 날 미친개 중대장(中隊長)이 더욱 미친 듯이 그에게 구타(毆打)를 했나 싶었다.

 

각 소대(小隊)에게 전달(傳達)한다. 각 소대(小隊) 근무조(勤務組)를 열외(列外)하고 각 소대원(小隊員)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정위치(正位置) 한다. 이상 전달 끝.”

 

잠시(暫時) () 소대장(小隊長)들은 각기(各其) 하얀 모나미 볼펜이 노끈에 매달린 메모장을 하나씩 들고 잰걸음으로 자기(自己) 소대(小隊) 내무반(內務班)으로 들어간다. 3소대(小隊) 상급병(上級兵)들은 의례(依例) 있는 일이려니 하고 느긋한 자세(姿勢)를 취()하고 있었으나, 송 일병(一兵)과 고 일병(一兵)은 자기 침상(寢牀) 앞으로 한 뼘 간격(間隔)을 두고 손을 무릎에 가지런히 얹은 채 부동자세(不動姿勢)로 눈을 끔벅이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소대원(小隊員)은 잘 듣기 바란다. 우리는 귀신(鬼神) 잡는 해병(海兵)이다. 호명(呼名)하는 병사(兵士)는 일주일(一週日) () 월남전(越南戰)에 참전(參戰)하는 청룡부대(靑龍部隊) 사단(師團)으로 차출(差出)이다. 나머지는 여기 남는다. 차출병(差出兵)은 내일부터 45일의 특별(特別) 휴가(休暇)를 명()한다. 이상(以上)!“

 

청룡부대(靑龍部隊)로 차출(差出)되는 병사(兵士)들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내무반(內務班)의 공기는 전율(戰慄)에 휩싸이곤 했다. 마지막으로 송창현 일등병(一等兵)의 이름이 불려졌다. "! 송창현 일병(一兵), 청룡부대(靑龍部隊) 차출(差出)을 명()받았습니다.“

 

송 일병(一兵)은 총 7명의 상급(上級) 차출병(差出兵)들이 행()하는 방식(方式)대로 소대장(小隊長)의 단호(斷乎)한 명령(命令)을 큰 소리로 복창(復唱)했다.

 

"어떤 놈들은 좋겠다. 공짜로 큰 배 타고 외국(外國)에도 나가보고 코쟁이가 주는 하루 생명(生命) 수당(手當) 1달라도 받고, 우리는 순전히 쭉쟁이구만."

 

'남는 자'에 포함(包含)된 왕고참(王古參) 홍규헌 병장(兵長)'떠나는 자'들을 비꼬는 투로 말하는 것을 보아 월남(越南) 땅은 굳이 갈 곳이 못되는 듯 보였다. 소대장(小隊長)이 떠난 후() 내무반(內務班)은 기묘(奇妙)한 분위기(雰圍氣)에 휩싸였다. 이름이 불린 병사(兵士)와 그렇지 않은 병사(兵士) 사이에는 서로의 가슴을 짓누르는 바리케이드가 쳐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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