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무엇이든 쓰게 된다. by 김중혁-9 | ||
등록일 | 2023.01.02 | 조회수 | 754 |
두 개의 마음이 매번(每番) 싸운다. 답(答)이 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매번(每番) 답(答)을 놓치고 또 다른 답(答)을 찾아 헤매고 있다. 답(答)은 답(答)의 형태(形態가 아닐 때가 많다. 두 가지 마음이 함께 존재(存在)하고 함께 있어야 한다. 답(答)을 알아내려는 마음과 답(答)은 없다는 마음 사이에서 글쓰는 에너지가 생긴다.
벽(壁)에 붙은 표어(標語)는 시간(時間)이 지나면 표어(標語) 기능(機能)을 잃어버리고 인테리어 역할(役割)만 한다. 그럼 떼어 버려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표어(標語)는 그 공간(空間)에 있는 사람에게는 주문(呪文)과 같은 것이다. 이따금 자기(自己)도 모르게 보고 읽고 몸속에 스며드는 것이다. 벽(壁)에 붙은 간단(簡單)한 한두 줄의 문구(文句)가 분위기(雰圍氣)를 반영(反影)한다. 조직원(組織員)의 삶과 지향(指向)을 정확(正確)히 알 수 있고 한 줄의 문장(文章)을 공유(共有)하는 게 멋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自身)이 좋아하는 문구(文句)나 표어(標語)를 걸어두는 것은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못 박아두는 일이다.
우리는 글을 통해 끊임없이 어떤 명제(命題)를 만들거나 정의(定義)를 내리려고 한다. 자신(自身)을 표현(表現)하기 위해 글을 쓰지만, 그 글이 내 자신(自身)을 온전하게 표현(表現)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 순간(瞬間)은 옳았지만, 시간(時間)이 지나면 달라진다.
우리가 쓴 문장(文章)이 불안정(不安定)하며 바보 같은 것인지도 안다. 바보 같은 줄 알면서도 계속 쓰고, 같은 문장(文章)을 끊임없이 쓸 수밖에 없다. 하얀 눈 위에 똑같은 구두 발자국을 계속 남기다 보면 길이 된다. 그냥 흔들리며 계속(繼續) 나아가며 써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변한다. 글은 생각과 마음의 역사(歷史)를 정리(整理)하는 것이지만 생각과 마음은 쉽게 지치며 쉽게 변질(變質)되고 쉽게 증발(蒸發)된다.
아는 게 독(毒)이 된다는 것을 알고 다음 날부터 책 읽기가 싫어졌다. 그 후로도 지식(知識)에 발목 잡힌 사람을 여럿 보았다. 지식(知識)을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유혹(誘惑)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모두 얄팍한 존재(存在)이고 거기서 거기인 존재(存在)들이니까... 기회(機會)가 오면 아는 체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독서(讀書)는 단순히 작가(作家)의 생각을 취(取)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온 세상(世上)을 여행(旅行)하는 행위(行爲)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비(神秘)로운 곳을 갈 수도 있고 낯선 장소(場所)에서도 익숙한 듯이 있을 수 있다. 독서(讀書)는 전혀 모르는 세계(世界)로 이끌 수도 있고 내 생각과 같은 사람들이 또 있다는 안도감(安堵感)을 주기도 한다.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속독가(速讀家)의 지식(知識)은 라면 빨리 먹기 대회에서 상(賞) 받은 것과 같다. 그런 지식(知識)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고 머리 회전(回轉)만 둔(鈍)하게 만든다. 피가 되고 살이 되지 않는다. 한 권(卷)이라도 소화(消化)시키면서 읽어야 더 많은 지적(知的)인 영향(影響)을 받을 수 있다.
책(冊)의 울타리를 미리 쳐 놓으면 다른 곳으로 넘어가기 힘들다. 많이 읽는다는 것은 오히려 자신(自身)의 한계(限界)를 좁히는 일이다. 아는 것을 계속 안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自身)의 한계(限界)에 높은 벽을 쌓는 일이다.
글쓰기는 독서(讀書)에서 시작(始作)된다. 어떤 책(冊)을 어떻게 읽었는지가 중요(重要)하다. 발목을 붙잡는 책(冊)이 아니고 계단(階段)이 되는 책(冊)을 읽어야 한다. 천천히 읽고, 낯설게 읽고, 자신(自身)의 경험(經驗)에 비추어 읽고, 두 번 세 번 읽고, 이해(理解)하며 읽고, 오독(誤讀)하면서 한 번 더 읽고, 읽지 않은 책인 것처럼 한 번 더 읽고, 줄을 그어가면서 읽어야 한다.
글쓰기의 방법(方法)이 다양(多樣)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긍정(肯定)할 만한 글쓰기 비법(秘法)이 존재(存在)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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