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무엇이든 쓰게 된다. by 김중혁-8 | ||
등록일 | 2023.01.02 | 조회수 | 787 |
화법(話法)
대사(臺詞)와 묘사(描寫)보다 더 중요(重要)한 것은 화법(話法)이다.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애정(愛情)과 공감(共感)이다. 우리에게는 먼 여행(旅行)이 남아 있는데 가슴에서 발까지 여행(旅行)이다. 발은 우리가 딛고 사는 삶의 현장(現場)이다. 애정(愛情)과 공감(共感)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實現)하는 현장(現場)은 발이다.
대화(對話)를 상상(想像)하는 힘이 글쓰기의 개성(個性) 즉 스타일을 만든다. 개성(個性)있는 글쓰기를 하려면 대화(對話)를 상상(想像)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자신(自身)의 주장(主張)을 선명(鮮明)하게 드러내지 않고 머뭇거리면 읽는 사람이 생각할 여지(餘地)가 많아진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또는 ‘그런 이야기가 퍼져 있다.’는 식의 말은 내 의견(意見)이나 주장(主張)이 아님을 분명(分明)히 밝히고 있다. 그래서 동의(同意)나 반대(反對)의 시작점(始作點)이 될 수 있다. 주장(主張)이 강하면 거칠어 보이고, 생각이나 의견(意見)이 많으면 소심(小心)해 보이고, 퍼져 있는 이야기를 나르면 줏대없이 보인다. 스타일이란 사실(事實)과 자기주장(自己主張)과 다른 의견(意見)을 최대(最大)한 제시(提示)한 다음 없앨 것은 없애는 방법(方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좋은 글은 머리와 가슴과 발이 함께 쓴 글이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들었거나 자신(自身)이 취재(取材)한 이야기, 자신(自身)의 주장(主張), 나와 다른 의견(意見)이 존재(存在)할 수 있다는 여러 가지 상황(狀況)이 어우러져야 좋은 글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狀況) 중에서 균형(均衡)을 잡아 나가는 것이 글쓰기의 방법(方法)이자 윤리(倫理)이고 글쓰기의 스타일이다.
시상식(施賞式)에서는 대작가(大作家)부터 소작가(小作家)까지 모두 하나 마나 한 소리만 했다. 문학창작(文學創作)에 대한 영감(靈感)은 절대(絶對) 발설(發說)하지 않겠다는 서약(誓約)을 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두루뭉술한 이야기로 시간(時間)을 끌었는데 막상 나도 이야기하고 보니 하나 마나 한 이야기밖에 할 게 없었다. 당신들이 비밀(秘密)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데 나만 보여줄 순 없지라는 의도(意圖)는 아니었다.
글을 잘 쓰게 되는 굉장(宏壯)한 비법(秘法)이 이 세상(世上) 어딘가에 존재(存在)할 것이라는 것은 착각(錯覺이다. 무슨 일이든지 꾸준히 많이 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 글쓰기의 비법(秘法)이 존재(存在)한다고 하더라도 말로 설명(說明)할 수는 없다.
참으로 헤아림이 없는 도(道)에 도달(到達하면 허공(虛空)과 같아서 말끔하게 공(空)한 것이다. 어찌 옳다 그르다 하겠는가? -남전(南泉)
도(道)가 무엇입니까?
가을 바람이 시원하구나.
무슨 뜻입니까?
물었으니 보여주었을 뿐,
뜻은 없다.
그러면 단지 이렇게 보여
주는 것이 도(道)입니까?
보여준다고 하면 벌써 어긋났다.
방금 보여준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본래 이렇게 드러나 있는
것을 누가 보여주고 누가 본다는 말이냐?
창작(創作)의 경지(境地)에 도달(到達)하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창작(創作)이 된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다. 누구에게 말해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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