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무엇이든 쓰게 된다. by 김중혁-6 | ||
등록일 | 2023.01.02 | 조회수 | 749 |
솔직(率直)하고 정직(正直)한 글
수많은 글쓰기 책(冊)에서 강조(强調)하는 것은 솔직(率直)함과 정직(正直)함이다. 포털의 댓글에는 마음속 깊숙이 은밀(隱密)하게 감춰둘 만한 내용(內容)의 감정(感情)이 송두리째 들어있는 글들이 많다. 댓글에는 누군가를 향한 시기(猜忌)와 질투(嫉妬) 욕망(欲望) 존경(尊敬) 비아냥이 거침없이 펼쳐진다. 댓글들이 금방(今方) 재미가 사라지는 이유(理由)는 거기에는 정리(整理)와 공감(共感)이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최초(最初)의 감정(感情)을 솔직(率直)히 쓰는 것이 아니라 정리(整理)된 마음을 쓰는 것이다. 댓글은 정리(整理)되지 않은 글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언제나 두 가지 마음을 동시(同時)에 품어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自身)을 분리(分離)시켜 싸우게 만든 후 대화(對話)하게 만들고 중재(仲裁)해야 한다. 글쓰기의 시작(始作)은 두 개 마음이 존재(存在)한다는 것을 확인(確認)하고 인정(認定)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문장(文章)이 아니라 문단(文段)
문장(文章)이 한 사람의 목소리로 적어가는 것이라면 문단(文段)은 두 개의 마음이 함께 써 내려가는 것이다. 글을 쓰듯이 말하고 말을 하듯이 글을 써야 한다. 문장(文章)의 아름다움보다는 논리(論理)의 아름다움을 선택(選擇)하고 깔끔한 말보다는 계속(繼續) 조정(調整)되고 조율(調律)되는 말투를 사용(使用)해야 한다.
생각이 바뀌고 장면(場面)이 바뀌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始作)되면 문단(文段)을 나눠야 한다. 앞 내용(內容)과 뒤쪽 내용(內容)이 다를 경우이거나 혹은 시간(時間)이 경과(經過)했을 때도 문단(文段)을 나눈다. 문단(文段)을 어디서 나누는가는 작가(作家)의 호흡(呼吸)이자 편집(編輯)의 리듬이다.
문장(文章)이 아니라 문단(文段)이 글쓰기의 기본(基本) 단위(單位)다. 문단(文段)에서 의미(意味)의 일관성(一貫性)이 시작(始作)되고 낱말들이 단순(單純)한 낱말 이상(以上)의 의미(意味)를 갖기 때문이다.
글이 마침내 생명(生命)을 갖게 된 것은 문단(文段) 때문이다. 문단(文段)은 융통성(融通性)이 많은 도구(道具)이다. 글을 잘 쓰려면 문단(文段)을 잘 이용(利用)하는 방법(方法)을 배워야 한다. 장단(長短)을 익혀야 하므로 많은 연습(練習)이 필요(必要)하다.
문단(文段)을 보고 이야기 덩어리를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다. 세상(世上)에는 작가(作家)의 수만큼 문단(文段)을 나누는 다양(多樣)한 방식(方式)이 존재(存在)한다. 문단(文段)은 세계관(世界觀)의 반영(反影)이기도 하다. 단어(單語)와 문장(文章)의 배열(配列)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지만, 문단(文段)을 나누는 틀을 잡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期間)이 필요(必要)하다. 세상(世上)은 말처럼 쉽고 간단(簡單)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문장(文章)이라도 흐름과 맞지 않으면 과감(果敢)하게 지워야 한다. 단어(單語)나 문장(文章)보다 문단(文段)의 리듬이 더욱 중요(重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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