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무엇이든 쓰게 된다. by 김중혁-3 | ||
등록일 | 2023.01.01 | 조회수 | 731 |
일을 즐기려면 잘해야 하고 잘하고 싶으면 즐겨야 한다. 평소(平素)에 우리는 삶을 관찰(觀察)하지 않는다. 삶의 미세(微細)한 틈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러나 글을 쓰려면 주변(周邊) 모든 것들을 자세(仔細)히 관찰(觀察)하는 것을 즐겨야 한다. 인간(人間)과 삶에 대한 관찰(觀察)과 그로 빚어진 통찰(洞察)들에 관심(關心)을 가져야 한다.
삶을 관찰(觀察)하려면 우선 삶과 자신(自身)을 적당(適當)하게 분리(分離)시켜야 한다. 대상(對象)에서 너무 떨어지면 감정이입(感情移入)이 힘들고 대상(對象)에 지나치게 몰입(沒入)하면 객관성(客觀性)을 잃는다.
섬세(纖細)하게 그리려면 자세(仔細)히 관찰(觀察)해야 한다. 얇은 선(線)을 그릴수록 눈썰미가 좋아진다. 책(冊)을 읽을 때도 섬세(纖細)하게 자세(仔細)히 읽도록 해야 한다. 음악(音樂)을 들으면서 글을 쓰면 음악(音樂)은 소설(小說)의 피부(皮膚)가 되고, 음악(音樂)은 소설(小說)의 마디가 된다.
새로운 것은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의 영향(影響)을 받은 바탕 위에 자신(自身)의 그림을 그려가는 것이다. 그 그림은 또 누군가의 밑그림이 된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여러 개의 끈으로 연결(連結)되어 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누군가 발자국 소리, 카페에서 들리는 잡담(雜談) 소리 등 내부(內部)의 리듬을 충실(充實)히 따라야 한다. 소설(小說) 속 주인공(主人公)들의 목소리도 환청(幻聽)일지 모르지만 실제(實際)로 들릴 때가 많다.
세상(世上)에 나쁜 글은 없고 못 쓴 글만 있을 뿐이다. 한 문장(文章)에 같은 단어(單語)가 서너 개 들어가면 못 쓴 글이다. 자신(自身)의 주장(主張)을 반복(反復)하는 글도 안 된다. 자기(自己)가 결론(結論)을 내서는 안 된다. 마지막을 교훈(敎訓)이나 반성(反省)으로 끝내는 것도 못 쓴 글이다. 자신(自身)의 주장(主張)을 가장 정확(正確)하고 빠르게 전달(傳達)할 수 있는 수단(手段)은 글쓰기가 아니라 말하기다.
스코틀랜드 화가(畵家) 폴카트너는 ‘그림은 결코 완성(完成)되지 않는다. 다만 흥미(興味)로운 곳에서 멈출 뿐이다.’고 하였다. 글쓰기도 결론(結論)을 내서는 안 된다. 글을 쓰다가 중간(中間)에 멈춰도 좋다. 결론(結論)을 그럴듯하게 내면 안 된다. 교훈(敎訓)이나 반성(反省)은 끝까지 안 된다. 글을 읽고 독자(讀者)가 결론(結論)을 내게 해야 한다. 일기장(日記帳) 쓰듯이 써서는 안 된다.
글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계획적(計劃的)으로 글을 구성(構成)할 줄 알아야 하고, 자신(自身)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正確)히 압축(壓縮)할 줄 알아야 한다. 생각대로 마구 쓰다가는 헛수고가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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