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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智異山) 둘레길 조영석 -7
등록일 2022.12.18 조회수 852

금대암(金臺庵) 너럭바위에 앉아 키 큰 전나무 너머로 보이는 지리산(智異山) 능선(稜線)과 눈맞춤을 하지 않았다면 지리산(智異山)을 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천왕봉을 중심으로 천봉만학(千峯萬壑)을 거느린 지리산(智異山) 주 능선(稜線)이 눈을 떠도 보이고 눈을 감아도 보이는 구간이다. 주 능선(稜線)은 금계마을까지 영화관(映畵館) 스크린처럼 1시간 이상 상영(上映)된다. 수많은 봉우리가 영웅상으로 펼쳐지는 영화에 몰입(沒入)하다 보면 어리석은 사람도 지혜(智慧)로워진다는 지리산(智異山)에 다가선다.

 

천봉만학(千峯萬壑) : 수많은 산봉우리와 골짜기

= 천산만학(千山萬壑) = 천봉만악(千峯萬嶽)

= 천산만악(千山萬嶽) = 만학천봉(萬壑千峰)

 

옥을 깎아 세운 듯한 만학천봉의 삼엄한 설경이 눈앞에 그림인 듯 벌여졌다.

 

오른쪽으로는 미인송 경연대회(競演大會)처럼 소나무들이 하나같이 쭉쭉 뻗어 하늘로 치솟고 있다. 전사(戰士)처럼 붉게 단장(丹粧)한 소나무들의 자태(姿態)에 지리산(智異山) 주봉(主峯)들의 기운(氣運)이 짙게 서려있다. 과수원(果樹園)에는 단감나무들이 연두색(軟豆色) 싹을 틔우며 주렁주렁 열매로 휘어질 가을날을 꿈꾸고 있다. 조선시대(時代) 공물(貢物)을 보관(保管)하던 창고(倉庫)가 있던 마을이라는 창원마을을 지나 산 중턱 하나를 새롭게 더 넘으면 금계마을이다.

 

자태(姿態) : 고운 몸가짐과 맵시, 식물 강 산에도 비유함

주봉(主峯) : 산맥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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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咸陽)에서 시작되는 첫걸음은 금계마을 앞 임천을 건너면서부터 시작된다. 피바위의 전설을 안고 있는 함천이 이곳으로 이어진다. 마을을 지켜온 당산(堂山)나무가 일산(日傘)처럼 그늘을 드리우며 쉬어가길 권한다. 늙은 당산목(堂山木)은 한국전쟁 당시 불타던 화염(火焰)과 메아리치던 총성(銃聲)의 울림을 기억할 것이다. 총성(銃聲)보다 먼저 스러지고 풀잎보다 가벼이 스러지던 목숨 들이다. 칠선계곡(七仙溪谷) 일대의 마을들은 빨지산 토벌(討伐)을 위한 국군(國軍)의 소개(疏開) 작전(作戰)으로 모두 불태워졌다.

 

목숨 : 살아가는 원동력, 숨을 쉬는 힘

목숨을 도모하다. : 죽을 지경에서 살 길을 찾다.

 

도모(圖謀) : 어떤 일을 이루려고 수단과 방법을 꾀함

일산(日傘) : 햇볕을 가리는 큰 우산

스러지다 : 차차 희미해지면서 없어지다. 불기운이 약해서 꺼지다.

 

소개(疏開) : 공습(攻襲) 등에 대비해 거주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로 분산시킴, 땅을 파서 물이 흐르게 하다.

 

정겹게 오갔을 산촌(山村)의 아픔이 새삼스럽다. 벽송사(碧松寺) 길은 천왕봉(天王峯) 방향(方向)으로 직진(直進)하며 오르는 호젓한 숲길이다. 걷기에 편하고 아름다워서 산기슭을 따라 산책(散策)하듯이 걸을 수 있다.

 

흐르는 물소리와 숲속에서 우짖는 새소리에 취하다 보면 가파름 정도야 금방(今方) 잊는다. 산새들의 노래는 명료(明瞭)하고 단순(單純)한 이어 부르기의 반복(反復)이다. 이쪽 산의 테너가 쑥국하고 노래를 뽑아내면 계곡 너머의 소프라노가 삐이익 받는다. 베이스가 꾸구국 화답(和答)하면 저쪽 숲에서 알토가 삐비비빅 이어가며 한 소절(小節)을 마무리한다. 휘이익 흉내를 내면 속아줌에 유쾌(愉快)하다.

 

점령군(占領軍)처럼 밀려오는 찔레꽃 머리의 산천(山川)은 눈부신 연초록(軟草綠)의 배냇내로 가득하다. 시간 속에서 계절(季節)의 순환(循環)은 변함없이 오고 또 가지만 그 시간을 채우는 생명(生命)은 늘 새롭다.

 

배냇내 : 갓난아이의 몸에서 나는 냄새

 

길섶의 꽃들이 반가이 아는 체를 한다. 나의 빈약(貧弱)한 지식(知識)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채우는 알 수 없는 꽃들의 얼굴은 해맑다. 담임(擔任)선생님이 성인(成人)이 되어 찾아온 제자(弟子)들의 이름을 기억해내듯이 길섶의 꽃들과 눈 맞추며 가는 길은 싱그럽다. 오르막의 끄트머리에서 서암정사(瑞庵精舍) 어귀가 불쑥 얼굴을 내민다. 낮게 깔리는 스님의 염불(念佛) 소리에 대웅전(大雄殿)의 황목련(黃木蓮) 꽃이 소리없이 내려오고 있다. 가는 길을 쉬 내주지 않는다.

 

함양군(咸陽郡)은 오도재에 변강쇠 공원을, 남원시는 백장계곡에 쌈지 공원을 조성하며 서로 변강쇠 고장을 주장하고 있다. 남원시는 강쇠주와 옹녀주라는 민속주(民俗酒)까지 생산(生産)하고 있다. 변강쇠와 옹녀가 오롯이 한곳에 머무르지는 않았을 테니 이들의 행적(行蹟)에 따라 남원(南原)과 함양(咸陽)이 서로 역할(役割)을 나누는 것도 고려(考慮)해 볼 만하다.

 

미인송(美人松)은 사모(思慕)의 마음을 마저 버리지 못했나 보다. 버팀목에 의지(依支)해가며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도인송(道人松)을 향해 기울고 있는 미인송(美人松)의 마음이 애잔하다. 오르막 숲길은 좁고 구불구불 휘어지며 가파르게 벽송산(碧松山)을 넘는다. 오르막이 가파르면 내리막 또한 가풀막지는 것이 자연의 법칙(法則)이다.

 

애잔하다. : 애처롭고 애틋하다. 가냘프고 약하다

 

가풀막 : 몹시 가파르고 비탈지다.

가풀막지다 : 가파르게 비탈져 있는 눈앞이 아찔하고 어지럽다

 

길섶 곳곳에 하얀 쪽동백이 은하수(銀河水)로 내려앉았다. 밟으면 별들이 소리 내어 울 것 같다. 떼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용유암에는 옥색(玉色)의 푸른 물빛에 푸른 하늘과 푸른 지리산(智異山)이 그림처럼 담겨 있다. 강은 끝없이 뻗어 올라가고 양편의 기암괴석(奇巖怪石)은 뒤틀려 불끈 튀어나오거나 날카롭게 일어선다. 바위는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하늘로 치솟으려 용틀임하는 용()의 비늘을 닮았다. 아직 오지 않는 나의 시간도 옹두리 가득한 나무에게 물어보고 싶다.

 

옥색(玉色) : 약간 파르스름한 빛깔

옹두리 : 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상한 자리에 결이 맺혀 혹처럼 불퉁해진 것, 짐승 정강이에 불퉁하게 나온 뼈, knot

 

지리산(智異山) 물줄기는 이름을 달리 부르는데 인월(引月)에서 기흥까지는 만수천(萬壽川), 기흥에서 용류담까지는 임천(臨川), 용류담에서 생초까지는 엄천(嚴川) 또는 휴천(休川), 생초에서 원지까지는 경호강, 그 다음은 남강(南江)으로 불린다.

 

계유정란(癸酉靖難)은 정란(政亂)이라고 하지 않고 정란(靖亂)이라고 한다. 난리(亂離)를 안정(安定)시켰다는 뜻이다. 한남대군은 서른한 살의 나이로 한 많은 일생을 이곳 새우섬에서 마감했다. 한남대군이 흘린 눈물은 새우섬을 휘돌아 가는 엄천강(嚴川江) 어디쯤에서 흐름을 멈추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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