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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걸으면 행복해지는 지리산(智異山) 둘레길 조영석 -6
등록일 2022.12.18 조회수 847

날달걀의 비릿함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가끔씩 날달걀에 구멍을 낸 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빨아먹다 보면 젖혀진 고개 위에서 푸른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택(選擇)을 요구하는 갈림길에 들어서서 선택(選擇)받지 못한 길을 생각하며 오르막길로 발길을 뗐다. 초입(初入)에는 석천(石泉)이라는 편액(扁額)이 붙은 약수터가 있다. 물은 통나무를 타고 연꽃 안으로 모여 흐르고 약수(藥水)터를 덮고 있는 기와지붕의 유려(流麗)한 처마선은 갈증(渴症)을 채웠다. 발길은 연가시처럼 우물로 갔다. 황매암(黃梅庵)을 지나서 길은 비로소 구불구불 숲길로 들어선다. 나무는 손을 뻗어 그림자를 드리우고, 산새는 짙은 나무 그림자에 숨어 흥얼거린다. 길을 걷는 내내 계곡물이 빚어내는 크고 작은 쏠과 소()의 흐르는 물소리가 황홀감(恍惚感)을 선사(膳賜)한다.

 

편액(扁額) : 건물이나 문루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 =현판(懸板)

횡액(橫額) : 가로로 거는 액자

유려(流麗)하다 : 글이나 말 곡선 따위가 미끈하고 아름답다.

처마선 : 처마의 윤곽(輪廓)을 이루는 선

연가시 : 가느다란 철사 모양의 동물

초입(初入) : 골목 등으로 들어가는 어귀, 어떤 일의 시초(始初)

 

: 작은 폭포

쏠라닥쏠라닥 : 야금야금 =쏠락쏠락

 

() : , 땅이 우묵하여 물이 괴어 있는 곳

 

꺾어진 길은 수성대와 맞닥뜨린다. 잠시 쉬어 땀을 훔치다 보면 바삐 흐르는 계곡물과 울창한 나무 사이로 병사(兵士)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어지는 숲길에는 한바탕 꽃 잔치를 끝낸 진달래와 생강나무가 연두색 새 옷으로 갈아입고 일상(日常)의 삶으로 돌아가고 있다. 정상(頂上)에는 한 뿌리에서 나온 소나무가 둘로 나뉜 뒤 다시 손을 맞잡고 나란히 하늘바라기를 하고 있다. 하나가 되면 답답하고 둘이 되면 그립다는 것을 소나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인력(引力)과 척력(斥力)이 균형(均衡)을 이룬 적당한 거리에서 손잡고 서 있는 소나무가 아름답다.

 

인력(引力) : 떨어져 있는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

척력(斥力) : 두 물체가 서로 밀어내는 힘

 

어느 순간 시야(視野)가 확 트이며 우람한 소나무 한 그루가 천왕봉(天王峯)을 배경(背景)으로 우뚝 서 있다. 지리산(智異山)도 품을 만한 넉넉함에 압도(壓倒)된다. 30여분 걸으며 한 움큼의 땀방울을 걷어 낸 다음에야 기다리던 숲길이 나왔다. 마을 아래로 계단식(階段式) 다랑이논들이 여인의 주름치마처럼 아스라하다. 쉼터에서 바라보는 다랑이논들이 애달프다.

 

누천년(累千年) : 여러 천년의 오랜 세월(歲月)

다랑이 : 산골짜기 여러 층으로 겹겹이 만든 작고 가는 논

()배미 : 논두렁으로 둘러싸인 논의 하나하나 구역

 

 

도모(圖謀) : 어떤 일을 이루려고 수단과 방법을 꾀함

 

까풀막길 : 오르막길의 방언(方言)

 

깍지다 : 경사(傾斜)지다 비탈지다의 방언

 

 

 

목숨을 잇는 것과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등가(等價)이던 시절에 다랑이논의 소출(所出)은 농부들이 흘린 땀방울보다 많지 않았을 터다. 고갯길은 가파르게 일어서고 내쉬는 숨결도 덩달아 가팔라진다. 남원(南原)의 목기(木器)가 등구재를 넘어 함양(咸陽) 어느 집 제상(祭床)에 오르고, 함양의 색시는 등구재를 넘어 남원으로 시집을 갔다. 넘기 힘든 고갯길은 삶의 고갯길 또한 이보다 덜하지 않다는 깨우침이자 위로(慰勞).

 

목숨 : 살아가는 원동력, 숨을 쉬는 힘

목숨을 도모하다. : 죽을 지경에서 살길을 찾다.

 

등가(等價) : 같은 값이나 가치

등가(藤架) : 기둥을 세우고 등나무를 올린 것

등가(燈架) : 등잔걸이

다랑이 : 산골짜기 여러 층으로 겹겹이 만든 작고 가는 논

 

소출(所出) : 논밭에서 나는 곡식

소출(繅出) : 고치에서 실을 뽑아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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