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책 읽기) 회색사랑(저자 윤창식)-6 | ||
등록일 | 2022.12.16 | 조회수 | 735 |
송창현 일병(一兵)은 4박 5일의 특별(特別) 휴가(休暇) 첫날을 고향(故鄕)집에서 보내고 목포(木浦)로 향했다.
'그새 정옥이는 잘 있을까?‘
<2부> 스치다 스미다
창현은 목포행(木浦行)을 결심(決心)한다. 성진삼거리에 서면 꼭 들리는 푸짐한 말소리 들이 있다. 차표도 끊고 버스 노선(路線)도 관리(管理)하는 젊은이와 귀가 좀 어두운 노인(老人)들과의 대화(對話)는 늘 재미난 유머거리였다.
"워디 가는 빤스요?" 노인(老人)이 묻는다.
“목포(木浦) 용댕이 가는 고쟁이요. 갈라면 가고 말라먼 말더라고 오라잇!!
낭랑(朗朗)한 사투리가 울려 퍼지면 삼거리는 왁자하게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송창현 일병(一兵)도 모처럼 귀에 익은 고향(故鄕)의 목소리에 웃음을 보이며 목포행(木浦行) 버스에 오른다. 송 일병(一兵)을 태운 금성여객 버스는 우뚝 솟은 별뫼산을 끼고 돌더니 송아지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독천을 지나 터덜터덜 비포장도로를 마저 달린다. '고쟁이'로 비유(比喩)되던 목포(木浦) 용당 포구(浦口) 종착점(終着點)이 코앞이다. 창현은 정옥이가 보내준 편지지(片紙紙)에 적힌 주소(住所)를 꺼내 본다.
창현은 목포(木浦) 대반동(大盤洞) 종점(終點) 행 시내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해안(海岸) 도로(道路)를 달린다. 차창(車窓) 밖을 내다보니 웬 젊은이가 철제(鐵製) 구조물(構造物)이 달린 오토바이에 한쪽 발을 땅에 내리고 신호등(信號燈)에 걸려 달달거리고 있었다. 네모난 철제(鐵製) 구조물(構造物)에는 여자(女子)가 난간(欄杆)을 붙잡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푸른 신호등(信號燈)이 켜지자 오토바이는 쏜살같이 파도(波濤) 뒤쪽으로 사라진다.
창현은 차창(車窓)으로 스며드는 따스한 봄 햇살 때문에 잠시 꿈을 꾼 것인가? 창현은 꿈이 많은 젊은이였다. 창현의 가슴 속에 용솟음치는 꿈의 층위(層位)는 하도 넓고 깊어서 하루에도 여러 번 꿈을 꾸고 꿈이 수시(隨時)로 바뀌었다. 한참을 더 달리자 대반동(大盤洞) 종점(終點)이 가까웠는지 승객(乘客)은 이제 창현 혼자뿐이다. 운전수(運轉手)가 룸미러를 힐끔거린다. 그러든가 말든가, 창현은 푸른 바다를 끼고 고기잡이용 어구(漁具)나 배의 닻을 만드는 간이(簡易) 공장(工場)에 눈길이 스친다. 텅텅 쇠 뭉치를 때리는 소리에 창현의 가슴이 뛴다.
중학교 졸업식 날 정씨네 제각(祭閣)에 숨어 친구들과 붉은 포도주(葡萄酒)를 몇 모금씩 나눠 마시고 쇠절구공이가 텅텅 곡식을 찧는 물방앗간 뒷전에서 처음으로 정옥이와 입맞춤을 나누지 않았던가. 창현의 가슴은 붉게 물들어갔다.
삼학봉제공장은 개나리 진달래가 지천(至賤)인 유달산(鍮達山) 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듬성듬성 박힌 판잣집 담벼락 위로 바다로 이어지는 까맣게 낡은 와이어 줄에 노인(老人)들의 빨간 내복(內服)들이 봄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정옥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닥친 일이라 온다는 기별도 하지 못하고 불쑥 정옥을 찾아온 것이 잘못이었을까? 창현은 정옥으로부터 군사우편(軍事郵便)이 점점 뜸해져간 것을 생각하고 불안(不安)의 갈기가 창현의 가슴팍을 한바탕 치고 지나간다.
“강정옥은 아파서 며칠 쉰다던디?" 재단사(裁斷師)로 보이는 40 중반이
창현에게 호의(好意)를 보이며 말했다.
"아니, 정옥이가 어디 아팠나요?"
"나야 그것까지는 잘 모르지."
"정옥이는 근무(勤務)는 착실히 했나요?"
"으응. 정옥인 얼굴도 예쁘고 바느질 솜씨도 좋고 싹싹하고 노래를 잘 불러서 여기선 인기(人氣)가 정말 좋지. 언니들이 수시(隨時)로 노래를 시키면 마다 않고 부르곤 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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